신학과 삶

개역개정판 번역은 골치덩어리다.

 

개정판 번역이 나온지 벌써 시간이 꽤 흘러서 대다수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개역한글판에 비해 번역오류가 있다. 

교단의 입장에 따라 교회 예배에 공식적으로 채택은 하지만 설교할 때 본문으로 사용하는데 많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개역개정의 현대적 번역을 존중하되 번역오류에 해당하는 부분은 개역한글판을 참고하고 있다.

 

개역개정이 시대적 상황과 현대적 표현에 맞추다 보니 국어적으로는 매끄러울지 모르니 성경적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서 문제가 많다.  너무 졸속으로 번역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설교시에도 반드시 번역오류를 지적하여 바로잡는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영어성경을 더 자주 참고할 수 밖에 없다.  원어성경을 본다고 해도 어차피 영어번역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여러가지 영어성경 번역본이 어떤 직역과 의역 중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표로 나타낸 자료가 있다.

NIV 는 많이 알려진 영어성경인데 원문에 비해 정확도가 비교적 떨어져서 요즘에는 ESV 가 많이 추천된다.

 

https://www.chapter3min.org/bible-translations-comparison-charts/

 

Bible translations: Comparison charts - Chapter 3 Ministries

Picking out a new Bible or curious about different translation types? Below are a few comparison charts to help you make your decision or learn more. Reading and comparing the charts should give you a good idea of how different versions compare to each oth

www.chapter3min.org

 

Comparison Ch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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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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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샘

자료가 아닌 소개글입니다.

 

안드로이드 플레이에 SWORD 로 검색되는 앱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 중에서 CrossWire 에서 만든 the SWORD project 가 Bishop 입니다.

Study Bilble (AND Bible) 과 비슷하며 좀 다르네요. 

데이터는 AND bible 과 공유합니다. 

특이한 점은 주석보기 모드라는 것이 있어서 화면이 둘로 나누어지고

성경을 하나 선택하면 왼쪽에 성경, 그리고 오른쪽에는 설치된 주석을 모두 보여줍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행화면.

 

모듈 설치 메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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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RD 칼빈 주석

2021. 11. 9. 13:40 : 자료실

PC 에서 the SWORD project 용 칼빈 주석입니다.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안드로이드 앱 AND Bible (현 Bible study ) 에서 다운 받아 설치했습니다. 

안드로이드 앱에서는 다운 목록에 표시 되는데 SWORD project 에서는 잘 안 보이네요.

 

1. SWORD project

압축을 풀어주면 mods.d 와 modules 폴더가 생깁니다.

Install Manager - Options - Local Path 에서 위의 폴더를 지정해주면 SWORD 에서 인식합니다.

선택하여 설치하면 됩니다.

Calvincomm.part1.rar
10.00MB
Calvincomm.part2.rar
4.94MB

 

2. 안드로이드 앱 (AND Bible/Bible study)

10M 업드로 제한으로 한개의 zip 파일로 업로드가 안됩니다.

위에서 rar 형식의 파일을 풀어준 뒤에 zip 으로 두 폴더를 함께 압축한 뒤에 안드로이폰으로 옮긴 뒤에 압축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Zip 으로 설치하기를 선택하여 찾아 설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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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 - 이관직 박사

이 글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것으로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를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정리한 글이다. 이에 요약 소개한다.

 

I. 창조질서 속에서 본 여성안수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를 이해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성을 다루고 있는 창조기사에 나타난 창조의 원리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성안수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찬성하는 이들은 창 1:27-28을 중심으로 창조시에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하게 지음받았으며 남자와 여자 모두 다스리는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권위의 차등은 타락후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창 2:19-20에서 여자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에서 창조사역에서의 아담의 리더십을 엿보게 하며 여자와의 역할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23절에서 아담은 여자에게 이름을 칭함으로 그의 머리됨의 권위를 행사했다. 또 여자는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2:18, 20). 헬퍼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도우실 때 하나님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 단어이며 그 단어 자체가 열등한 것이라는 의미는 포함하지 않는다.

 

창조기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동등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성과 역할을 감당하도록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동등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현대의 페미니즘의 영향도 있다고 보여진다.

 

II. 신약에 나타난 여성안수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은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성취된 것으로 행 2:17-18에 인용되어 있는 것처럼 신약시대의 여성사역의 근거를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두 학자 존 파이퍼와 웨인 그루뎀은 초대교회에서 여성의 예언사역에 대해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예언 사역은 오늘날 설교나 특별계시 수준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을 비평한다.

 

신약에서 여성안수와 관련되어 자주 언급되는 성경구절들로는 고전 11:2-6, 14:34-36, 딤전 2:11-15, 5:21-33, 3:28을 들 수 있다. 고전 11:3에서는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머리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머리를 권위와 연결짓고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 머리를 근원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레이몬드 오르트런드는 첫째 해석을 지지하여 남성의 머리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두 사람의 영적으로 동등한 인간의 동반자 관계에서 남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향으로 그 동반자관계를 이끌어가는 우선적인 책임성을 지는 것이다.” 그는 남성의 헤드십의 의미가 남성의 지배성의 개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 밝히고 남성의 지배성이라 여성의 영적인 동등성과 권리, 가치를 무시하고 여성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의 의지를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김의환 교수는 고전 11:5절을 근거로 교회 안에서 여자가 예언하였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여자 안수를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 고전 11:2-6의 문맥을 볼 때 여자의 예언을 강조하기보다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됨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 비평하였다.

 

고전 14:34-35의 주석에서 박윤선 박사는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는 것을 남자를 지배하는 공적인 교훈을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이 말은 무슨 말이든지 금지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딤전 2:11-14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박윤선은 종용히라는 부사가 침묵만 의미하지는 않으며 부녀가 일반적으로 주장할 자가 아니라 순종할 자이며 소동할 자가 아니라 안정할 자며 남자들을 가르칠 자가 아니라 배울 자라고 말함으로 여성안수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여성의 필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권성수 교수는 딤전 2:12에 대해 바울이 이 본문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 일체를 금지한 것으 아니며 여자가 공예배에서 남자(성인)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였다고 주석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가르치는내용에 대해 더글라스 무의 해석에서 본문의 가르침은 성경이나 교리의 전승과 관계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무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그 가르침은 생활교육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이 본문을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남성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 문맥상 그같은 해석은 적합하지 않다고 비평하면서 주관한다는 동사는 여성의 남성 지배적인 주관을 포함하여 일체의 남성 주관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하였다.

 

권성수 교수는 고전 11:5에서 여자가 공예배에서 예언하는 것에 언급하면서 바울은 남성 헤드십에 순복하는 자세를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여자의 공예배시 예언을 인정했다고 하면서 바울에게 상호모순성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는 여성안수는 남성 헤드십을 무시한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사역의 제한은 남성 헤드십의 원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28의 말씀 또한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남자와 여자가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맡게 되는 사역의 구분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에는 제한이 없이 모든 인간들에게 문이 열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본문으로 보아야 한다고 존 파이퍼와 웨인 그루뎀은 주장한다. 아무튼 이 말씀은 노예들과 여자들에게 갖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시각에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루이스 존슨은 갈 3:28에 관하여 역사적 인물들, 예를 들어 안디옥의 감독인 익나티우스, 져스틴 마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힙폴리투스, 닛사의 그레고리, 존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칼빈의 주석들에서 살펴본 후에 결론 짓기를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갈 3:28이 결혼관계에서와 교회생활에서 남자, 여자의 역할의 구별을 폐지하고 있다고 본 사람은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권성수 교수도 그의 논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는 갈 3:28의 말씀을 가지고 딤전 2:11-15의 본문에 나타나는 남녀의 역할 차이와 남성 헤드십의 원리를 부정하고 여성 사역의 완전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남녀의 역할 차이와 남성 헤드십의 원리는 타락 이전 창조의 원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권리면에서 차별이 없이 동일하나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구별이 있는 것이라고 밝힌다.

 

박형룡 박사는 그의 교의신학전집 중 교회론에서 여성안수에 대한 견해를 언급한다. 그는 여성의 여러 가지 사역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전체교회에 대해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은 남자에게 속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박형룡 박사는 안수를 받는 직책 외에 있어서 여성의 다양한 사역과 교훈하는 사역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시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총시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쳐 온 박아론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하는 입장이 정통개혁신학의 입장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바울이 비록 여성이 교회에서 다스리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을 금하였지만 여성들의 다양한 사역의 가능성에 대해 높게 평가함을 그의 사신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여성들의 이름들을 지적하며 문안하였고 그리고 겐그리아 교회의 사역자로서 뵈뵈를 추천한 후에 브리스길라에게 그의 남편에 앞서 이름을 들고 있다. 또 그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유오디오와 순두게를 권면하는 부분을 통해 보면 이들이 교회에서 차지한 사역의 영역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로마에 있는 교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가르치는 사역은 아니었다고 해도 이미 활발하게 있었고 바울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많은 여성들이 초대교회에서 여러 가지 면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안수받은 자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사역은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전한 자들도 여자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 따라간 자들도 여인들이었고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들 가운데는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아 예수님의 사역에도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여성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여성들이 교회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안수를 받고 활동했다는 증거는 성경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III. 맺음말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신구약 66권의 말씀은 정확무오한 말씀이나 죄로 오염되어 있는 한계성을 가진 우리 인간들의 성경해석은 때로는 100% 완벽하게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이 여성안수 문제에 대해서도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의 견해를 비판하는 동시에 열려 있는 귀와 눈을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해석하며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소중한 존재로서 동등하지만 역할 면에 있어 차이가 있고 남성의 머리됨의 전제하에서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과 사역을 지지하고 있다.

 

끝으로 필자는 여성이 전체 교회에서 다스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안수를 찬성하지 않지만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것이 역으로 여성이 보다 다양한 사역의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제한하는 구실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현재의 한국교회와 미래의 한국교회에서 크리스챤 여성들의 사역의 장이 구체적으로 보다 넓혀지도록 교회와 교단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Posted by 작은샘

http://www.reformednews.co.kr/9631

[논문] 교회 내 여성의 기능과 성직의 자격 -김의원 박사

이 글은 김의원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글로 교회 내에서 여성의 기능과 성직의 자격에 대해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논한 것이다. 이에 요약 소개한다.

 

199479회 통합측 총회에서 여성안수 문제에 대해 허용하는 결의를 하자 그 여파가 합동측에까지 확대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 논의가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에 논의 일환으로 이번 신학지남 가을호에 여성 안수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여성안수를 결정하기 전에 장로회신학대학 다원화목회연구원(1992)에서 교역과 여성안수라는 책을 발간하였고 이 책은 어느 면에서 교단 내의 흐름을 여성 안수 허용으로 흘러가도록 학문적인 배경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권두언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여성이 안수받는 것이 성경적이요 오늘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라고 두 가지를 함께 묻고 있는데 이 둘은 순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후자인 여성 안수가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에 매우 필요한 것인가?”는 이차적인 문제로 전적으로 전자의 문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문제를 해결함이 없이 단지 현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직분을 세웠다면 이는 교회를 일종의 사회단체쯤 여긴 결과가 될 것이다. 또 전자의 문제 곧 여성이 안수받는 것이 성경적인가?”라는 질문도 자세히 검토하면 여기에도 여성과 안수 사이의 어떤 연관성을 논의하거나 정의함이 없이 이를 혼합시킨 우를 범하였다. 오히려 문제를 정확하게 보려면 이렇게 질문해야 했다. “여성은 성경적 교회구조내에서 성직에 참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가?”

 

1.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학자들이 여성 안수 문제를 논의하면서 초점을 성직인 안수보다는 여성에 두고 여성이 그 직책을 담당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묻고 있다. 기실 여기에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여성 안수를 여성이 지닌 능력 혹은 기능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에 있다. 곧 여성이 그 직분을 담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여성이 교회 내에서 그 직분을 담당하도록 성경적 기능과 자격을 갖추었는가?

 

(1) 여성의 능력적 측면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자들은 여성의 능력이 남성의 능력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데서 출발하였다. 이들은 안수문제를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차별과 대결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 이 문제의 답을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 내지는 가부장 문화의 남존여비사상의 전제하에서 찾으려 한다. 이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오랜동안 성직은 남성만이 향유하는 특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문화가 발전되면서 새 성경해석법이 개발되어 문자적 해석이 얽매던 전통적 개념에 변화를 가져다 주어 한두 어구보다는 전체의 문맥과 맥락에서 메시지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여성안수를 금기시 했던 교회들도 성의 장벽을 넘어 성직을 남녀가 공유하게 되었다. 과거 성적 차별이 이제는 없어졌기에 성직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출발점은 갈 3:28인 것 같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남녀간의 성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의 문맥은 교회의 구조적 측면보다는 구원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이나 신분, 그리고 성의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기에 그리스도 옷 입혀져 하나님의 구원백성이 되는 것과 같이 여자도 구원백성 가운데 속하였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 본문으로 여성의 안수문제의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여성의 기능적 측면

 

여성의 기능을 가정 내에서의 기능들을 비교해보면 크게 차이가 주어진다. 남녀의 가능상의 구별은 신체적 생리적 차이가 주어짐과 동시에 이미 창조질서의 가정의 개념에 드러난다. 여자는 창조규례를 통해 가정 내에서 남자에 대한 종속성을 부여받았다. 그렇다면 여자의 종속성은 가정에만 국한되어 있는가? 가정구조에서 확장된 교회구조 내에서도 여자의 종속성을 연속된다고 보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다음에 다룰 안수의 상관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었으며 이는 교회의 구조적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2. 여성 안수 문제의 초점은 여성 능력의 문제가 아닌 안수로 나타나는 성직의 개념과 성직을 감당할 수 있는 기능에 있다. 안수는 안수받는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 교회의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남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여성도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성직만 못하는가에서 출발한다면 성직을 일반 직능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는 우리를 범하게 된다.

  

안수로 주어지는 성직을 여자가 취할 수 있는 기능과 자격을 지니는가? 이는 성직의 문제이기에 남녀의 성적 구별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여성안수 문제는 남녀 차별의 관점이 아니라 그 기능과 자격에 있어 남녀 구별이 지켜져야 하며 그것이 성경적인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직을 부여하는 교회구조와 이에 대한 여성의 기능 사이의 문제이다.

 

교회구조내에서 여성이 성직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1) 성직을 구원사적 하나님의 은사의 직무로 보는가?

 

(2) 성직을 가정구조가 확장된 교회구조의 직능으로 보는가에 달려 있다. 전자에 따르면 성직도 여러 은사들 중의 하나로 보아 다른 모든 은사를 남녀가 공유하였다는 이유로 여성도 성직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의 직분을 논의하면서 다른 은사들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장로의 직분을 논하면서 장로들이 행정이나 재정을 담당할 것이기에 그들의 행정과 재정능력을 보라는 구절이 없다. 직분을 언급한 구절은 모두 직분을 담당할만한 자격만을 논의할 따름이다. 성직은 후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교회구조내의 성직은 가정구조내의 직무와 연결되어 있다. 곧 창조질서에 정해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 기능 때문에 여성은 성직을 담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이 교회 안에서의 여자의 역할을 한정시킨 구절로 고전 11:3-5, 14:34-35, 딤전 2:11-15을 들 수 있다. 이 구절들은 당시의 사회적이고 사상적 배경에서 주어진 한정적 규례가 아니고 성경적이고 영구적인 원리이다. 이 구절들은 교회 내에서의 여자의 종속성을 가르치고 또 창조규례를 통해 정해진 가정구조라는 테두리 내에서 여자들의 기능적 측면을 말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성경이 교회 특히 교회의 지도자를 논의할 때 항상 가정의 영역과 결부시킨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다스리고 목양한다.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의 직분을 논의하면서 가정 내에서의 아버지 역할과 연결시킨다. 장로는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딤전 3:4). 이 개념을 활용하여 교회에 적용하였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딤전 3:5). 여기서 몇 가지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1) 가정단위와 지역교회는 서로 상관관계를 가진다. 곧 가정은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

 

(2) 바울은 이 유추를 통해 다스린다라는 단어의 기능적 정의를 내린다. 곧 다스림이란 가정과 교회에 대한 온전한 돌봄이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가정에서 모든 지도력을 책임지도록 지키신 것처럼 하나님은 장로가 교회에서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록 지키신다.

 

(3) 이 관계 유추에 나타난 주요 원리는 교회에서 통하는 진리가 곧 가정에서 통하는 진리라고 본다. 가정의 원리와 교회의 원리를 구분해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원리는 가정의 원리에서 교회의 원리로 확장된 것인 것만큼 가정에 세워지는 지도자 원리도 그대로 교회에서의 지도자 원리와 연결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여성안수 문제는 여성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직에 대한 문제로 교회구조상 여자가 성직의 기능에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남녀는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존재론적 동등성을 인정하지마 가정구조내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여기서 확장된 교회구조내에서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여자는 성경적으로 볼 때 경륜적 또는 기능적 종속성을 가지며 여자가 교히에서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 또는 집사나 행정직은 맡을 수 있으나 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려서는 안되며 여자는 이런 관점에서 목사나 장로나 전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Posted by 작은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