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삶

org date: 2018-01-02 19:51

 

고고학적으로 고대문명의 출발이라고 여겨지는 수메르인의 기원이 고고학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메르 언어와 우리 말과의 유사성으로 한민족이 기원이 되는 민족이 

수메르로 건너가서 문명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다.  수메르(<-소머리)인 이라는 소설도 있다.

 

수메르 문명이 10진법, 60진법, 수레이용, 상하수도 시설 등 고도로 발전된 문명인데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기원을 알기가 어렵다고 한다.  외부, 특히 동방에서 왔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메르 언어가 우리말과 같거나 비슷한 것이 많다면 우리 민족의 기원이 수메르인과 관련

있다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유사점이 있고 수메르 지역에서 점진적인 문명발전

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우리가 원조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수메르 문명이 발전하는 점진적 과정의 유물이 별로 없어서 기원을 알기 어렵다는 것은 

오히려 노아의 대홍수의 사실성을 뒷받침한다.

 

성경에 의하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홍수가 일어나서 방주에서 나오기까지는 1년이 좀 

넘는 기간이다.  홍수로 인류가 대부분 멸망하고 노아와 그 가족은 살아남았다.  

홍수이전의 문명이 노아와 그 가족을 통해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경에 의하면 아담이 930세에 죽고 그 후 80년 쯤 후에 노아가 태어났다.  노아가 태어나기

까지 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홍수가 일어난 것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이다.  그리고 바벨탑 사건이 있기 전이므로 언어가 

하나였다.  1600년의 시간 동안 가까운 곳에 모여 살았으니 노아의 홍수 이전에 도시 문명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창 4장에 라멕의 자손 두발가인이 기계를 만드는 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미 문명이 발달하

기 사작한 것이다.  노아는 큰 방주를 만들었다.  그만한 목재 기술이 있었다.  치수를 재고 

큰 배를 만들만한 기술이 발전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로 대부분 사람이 죽었고 노아의 자손을 통해서 그 시대의 문명이 계속 

지속되었을 것이다.  

 

수메르인의 홍수신화는 과장과 모순이 많다.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의 크기와 규격이 

큰 파도와 큰 비를 견디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노아의 약점과 잘못이 가감없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기록이 더 원전일 가능성이 높다. 

 

노아의 홍수에 대해 모세가 성경에 기록한 것은 나중이었을지라도 그 때까지 이어져 내려온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이다.  

모세가 노아의 홍수를 기록했다고 해서 노아의 홍수가 그 때 일어났을 리가 없지 않은가?

 

수메르의 홍수신화가 그 내용을 각색한 것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메르인이 노아의 아들인 셈과 함의 자손이라고 알려져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달라지면서 언어가 같은 계통의 족속들이 흩어져서 살았을 것이다.  수메르 언어를 쓰는 사람

들의 한 줄기가 멀리 동방으로 이주했을 것이고 그로부터 우리 민족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성경을 근거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Posted by 작은샘

http://www.kangnam.or.kr/ksk/sub4/sub4_02_read.asp?accountid=3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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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탈북자소식 / 정치&경제 뉴스   수메르인은 노아의 후손인 함족, 셈족  성경이 수메르신화를 베꼈다는 잘못된 상식 [2013-09-30 오후 9:27:41ㅣ조회:10919]   성경의 "시날"(Shinar), 이집트의 "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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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은 노아의 후손인 함족, 셈족 "

  - 성경이 수메르신화를 베꼈다는 잘못된 상식

 

성경의 "시날"(Shinar), 이집트의 "신그르"(Sngr), 히타이트의 "산하르"(Sanhar)는 모두 "수메르" 의 서방 방언으로 볼 수 있다. 일부 안티기독교인들이 성경의 기록연대가 수메르의 홍수신화 기록연대보다 늦는다는점을 들어 성경이 수메르신화를 베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상식입니다. 여러가지 많은 자료를 참고 분석한결과 수메르인은 노아의 자손이며 노아의 홍수사건이 구전으로 전승되어오다 "길가메쉬의 서사시"로 각색되어 쐐기문자로 점토판에 기록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1. 성경은 기록된 역사이고 수메르신화는 신화일뿐이다.

역사는 과거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그 대상은 직접 우리들이 지각(知覺)할 수 없는것이므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문서, 즉 사료(史料)를 매개로 하여 인식된다. 역사학의 사료는 기록된문서, 유물, ·집터, 언어 등이 모두가 사료이다. 그러나 사료 가운데서 문자에 의한 기록문서가 가장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류 역사상 성경외에는 BC3000 년 이전의 사건기록은 없다. 따라서 사실관계의 확인에서 기록된 역사로써의 성경의 권위가 가장높다고 볼수있다. 그 이전의 선사시대사건들은 고고학적 유물의 특성및 연관관계를 통하여 추정할수있을 뿐이다. 따라서 역사 이전의 사건 즉 선사시대의 일들은 기록된 역사를 뒤집을수 없다. 성경은 BC1500 년경에 수메르신화는 BC2250 년경에 쓰여졌으며 수메르의기록이 750년 앞선다. 그러나 수메르신화가 기록된 점토판의 연대측정이 정확하다고 볼수가 없고 점토판에 수메르신화가 쓰여진 연대가 기록되지도 않았다. 유물의 연대측정은 학자에 따라서 몇천년 씩이나 차이가 나는 경우도있기때문에 수메르의 신화기록이 성경보다 앞선다고 할수도없다. 또한 점토판의 기록내용이 역사적 기록으로 볼수없고 단순한 신화를 기록하고 있을뿐이다. 반면에 성경은 역사적으로 매우 구체적이며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인물의 자세한 족보, 이름, 수명, 사건, 거주지, 이동경로등 수메르신화에 비교해 볼때 성경은 너무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2.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이 연구한 수메르 역사와 성경내용을 비교분석 (유물연대측정 오차로인해 선사시대의 연대는 성경의 연대와 일치하지 않을수있다)

<선사시대-유물을 가지고 추정한 고고학적 연대및 사건>

BC5000 할라프 문화 (선사시대~아시리아) 북시리아에서 이라크 남부에 걸쳐분포

(성경: 노아의 아들 함의 자손인 구스의 아들 "니므롯" 이 북시리아와 시날 (슈메르) 에 걸친 나라를 세웠음을 기록하고있다. 창세기 10:1~12)
BC4000~3500 우바이드 문화. 셈계 유목민이 우바이드인과 섞인다.

(성경: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 역시 시날 (슈메르) 평지에 옮겨와서 성읍과 도시를 건설. 창세기 10:21~32, 11:1~9)

BC3500 수메르 문화 시작.
BC3000 수메르어와 셈족의 아카드어와 혼용.
BC2800 길가메쉬가 태어나 126 년동안 우르크를 통치했고 신화와 역사의 중간선상에 있는인물이었다.

<역사시대-기록된 문서>

BC2250 쐐기문자 체계가 완성되었다. 기원전 2000년대가 끝나기 전에 수메르인들이 점토판, 기둥, 원주 등에 당시까지 구전되어 내려오던 문학적 창작물들을 새겼다-"길가메쉬의 서사시"

 

BC2600 최초의 셈어 아카드어 출현.
BC2335 최초의 셈족국가인 아카드 탄생.
BC2123 셈족의 히브리 최초의 족장 아브라함 탄생.
(성경: 셈에서 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보가 기록. 창세기 11:10~26)

BC2004 셈족계열 아모리 이씬왕조 성립하고 수메르는 멸망. 함족계열 아모리계 라르싸.

(성경: 아모리는 노아의 자식인 함의 후손임을 기록. 창세기 10:16)
BC1792 바빌론 함무라비왕에 의해 아모리계 라르싸 멸망.


3. 수메르인은 노아의 후손인 함족, 셈족이다.

수메르의 역사는 할라프문화시대-우바이드문화시대-수메르시대로 연결된다. 선사시대인 BC5000 할라프시대는 북시리아에서 이라크 남부에 걸쳐분포되었는데 성경에는 노아의 아들 함의 자손인 구스의 아들 "니므롯" 이 북시리아와 시날 (슈메르) 에 걸친 나라를 세웠음을 기록하고있다. (창세기 10:1~12) 따라서 수메르인의 조상은 노아의 후손임이 틀림없다. 역시 선사시대인 BC4000~3500 우바이드 문화시대에는 셈계 유목민이 우바이드인과 섞인다. 성경에는 노아의 아들 셈의 자손 역시 시날 (슈메르) 평지에 옮겨와서 성읍과 도시를 건설했다고 기록하고있다. (창세기 10:21~32, 11:1~9) BC2335 최초의 셈족국가인 아카드가 탄생되는데 BC2123 셈족의 히브리 최초의 족장 아브라함이 탄생한다. 성경에는 셈에서 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보가 기록되어있다. (창세기 11:10~26) 성경의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지방이다. BC2004 셈족계열 아모리 이씬왕조가 성립하고 함족계열 아모리계 라르싸와 대립하다 수메르는 바빌론에의해 멸망한다. 성경에는 아모리는 노아의 자식인 함의 후손임을 기록. (창세기 10:16) 역사학자가 증명하지못한 수메르인의 조상이 노아의 후손인 함족, 셈족임을 성경이 증명하고있다.


4. 노아홍수의 내용적 측면에서 볼때 성경이 진실이다.

성경이 진실이라는 또하나의 증거는 길가메쉬 서사시는 길가메쉬란 인물과 홍수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신화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반면 성경 속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길가메시를 신인 (2/3는 신, 1/3은 인간) 으로 표현하고 있고 여신 아루루 (Aruru)가 그의 몸을 고안했으며 완벽한 외모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길가메시는 완전무결하며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신들마저도 그에게 쩔쩔맬 정도로... 또한 죽지 않는 우샤나비(Urshanabi) 에게 암석을 묶어서 바다 깊은 곳에 던져 넣고 나왔다고도 하고 또 하늘에서 한 황소가 내려왔는데 이 황소가 숨을 쉴 때마다 땅이 열리면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빠져 죽었다고 한다. 숨쉴 때마다 땅이 열린다는 황당한 이야기이다. 길가메시, 지우수드라 모두 수메르의 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두 왕의 행적을 기리고 찬양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모세가 기록한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보면, 노아가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물론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하나님께 택함을 받지만, 홍수가 끝나자마자 포도농사하다가 포도주 먹고 벌거벗고 잔다. 950살씩이나 살았지만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명예로운 것도 아니고, 힘이라도 센 것도 아니고... 앞의 두 수메르왕에 비하면 너무나 형편없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모세가 어떤 허무맹랑한 거짓 이야기를 지어 국민들을 우롱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예인 것이다. 즉 길가메쉬 신화는 환타지 소설로써 그들 조상대대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성경내용을 토대로 각색하여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5. 노아의 방주의 모양이나 설계가 성경이 원전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된다.

길가메시 서사시 속 홍수 이야기의 가장 큰 오류가 무엇일까? 바로 "방주의 모양" 이다. 서사시에 나오는 방주의 모양은 가로세로 120규빗 정사각형이다. 가로세로 모두 15피트되는 정사각형인데 높이만 200피트이다. 아마도 이걸 쓴 사람은 평생 배를 본 적도, 타 본 적도 없는 사람인것같다. 이러한 구조는 홍수때의 엄청난 파도에의해 쉽게 뒤집어지는 구조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속 노아의 방주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난리가 난다. 배가 쓰러져서 안에 있는 생물들이 다 압사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보잉 747 비행기를 두 대 늘어놓은 크기이다. 모양은 수메르의 것보다 훨씬 상식적이고 현실적이지만, 과연 이 길쭉한 모양이 과학적으로도 타당한 근거가 있는 형태일까? 노아의 방주모양은 오늘날의 유조선과 흡사한 형태이다. 파도에 가장 안정적인 구조인것이다.

과학자들이 분석한 노아의 방주는 매우 안정적 구조이다. 60도 까지 기울어져도 오뚜기처럼 다시 돌아오는 매우 안정적인 구조이다. 대홍수라면 정말 파도가 무시무시한 수준일텐데 하나님이 직접설계하신 방주는 거친파도를 충분히 극복하는 신기한 구조이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와 그의 조상 아브라함은 유목민으로써 평생 배를 타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배에대한 아무런 지식도없이 고의적으로 배의 구조를 이렇게 과학적으로 꾸며서 기록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방주의 모양과 설계를 보면 성경이 원전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된다.

이상과같은 역사적, 고고학적, 성경적, 과학적사실을 토대로 결론을 내리면 성경이 원전이라는것이다.

1) 인류 역사상 성경외에는 BC3000 년 이전의 사건기록은 없다. 따라서 사실관계의 확인에서 기록된 역사로써의 성경의 권위가 가장높다고 볼수있다.
2) 언어학적으로 성경의 "시날"(Shinar) 은 "수메르" 의 서방 방언으로 볼 수 있다. "수메르" 의 뜻은 "셈의 자손" 이고, 셈은 곧 노아의 아들이며, 동시에 유대민족의 선조로서 일치한다.
3) 유물의 연대측정은 오차가 크기때문에 750년 차이를 가지고 수메르의 신화기록이 성경보다 앞선다고 할수도없다.
4) 수메르의 역사이전 할라프문화시대-우바이드문화시대는 노아의 자손인 함족, 셈족에 의해 이루어진것임 이 성경에 기록.
5) 노아홍수의 내용적 측면에서 볼때 성경이 사실적이며 길가메쉬 신화는 환타지 소설로써 왕을 찬양하기위해 그들 조상대대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성경내용을 토대로 각색하여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6) 노아의 방주의 모양이나 설계를 볼때 성경이 원전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된다.


<출처> 성경, 최조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저, 인류역사의 회고/ 유종호저, 위키백과, 네이버백과,두산백과

 

Posted by 작은샘

[펌] "난 예수를 따르는 사람, 죽음 두렵지 않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지사의 신앙 고백 '화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바수키 차하야 주지사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인 주지사가 된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가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상은 기독교 박해감시단체인 국제기독연대(International Chrisitan Concern, ICC) 페이스북에 공유되면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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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혹 주지사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저는 제 삶에서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제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저는 '이사'(Isa,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다. 저는 천국에 갈 것으로 확신한다. 주지사 자리는 하나님이 주셨다. 주님이 기회를 주신다면 다시 여러분의 주지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가 뭘 믿어야 하는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다. 여러분은 제가 이 자리를 잃을 것을 왜 두려워하지 않는지 아는가? 이 자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이기 때문이다. 왜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천국으로 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제가 가야할 처소가 예비돼 있고, 먹을 것도 걱정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약속이다. 저는 예수를 따르는 자이다. 그의 약속은 굉장히 명확하다. 예수님은 제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증해주셨다. 그것이 저의 믿음의 확증들이다. 제가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다"라고 했다. 

중국계 기독교인인 아혹 주지사는 재선을 준비하던 지난해 9월 이슬람 경전인 꾸란이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말에 "해당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게 속았다면 내게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무슬림 강경파는 그가 꾸란 자체를 부정했다고 주장하며 거듭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지지율이 급락한 그는 4월 19일 열린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결선투표에서 무슬림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당시 현지에서는 시위 배후에 무슬림이 대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경제권을 장악한 소수 화교들이 정치권력까지 손에 쥐는 것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자카르타 지방법원은 5월 초 그에게 신성모독죄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무슬림 과격파의 주장에 편승해 과도한 판결을 내렸다는 논란이 일면서 각지에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아혹 주지사 측은 국론이 더 이상 분열되면 안 된다며 항소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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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영화 '히말라야' 교훈  (0) 2021.06.04
Posted by 작은샘

양승훈 교수의 '창조와 격변' - 교보문고 책소개.

 

목차

서 문

 

감사의 글

 

추천사 (유정철 교수, 윤성희 박사, 박세범 장로)

제1장 창조론과 진화론
제2장 자연발생설과 특수창조론
제3장 열역학과 생명의 기원
제4장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가?
제5장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제6장 생물학적 증거들
제7장 헥켈의 사기극
제8장 화석의 증거들
제9장 인류의 기원 논쟁
제10장 라마피테쿠스에서 도구인간까지
제11장 직립원인에서 현생인류까지
제12장 과학적 연대논쟁
제13장 창세기 대홍수
제14장 대홍수와 다중격변
제15장 창조와 설계
제16장 기원 논쟁과 세계관

내용 색인
창조회 후원교회 및 기관(목회자)
저자 소개

 

책 속으로

# 서문
그러나 적어도 저는 자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창조론적 견해가 진화론적 견해보다 더 타당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본서를 썼습니다. 저는 제가 정립해 온 세계관과 그동안 받아온 교육과 연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창조론적 견해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생명 세계의 존재를 설명하는 바른 견해라고 믿습니다... 필자는 본서가 종교적 교리에 대한 맹목적 변증보다도 진리에 대한 합리적 변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교리가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하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작은샘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69 

 

내가 창조과학을 떠난 네 가지 이유

- 다중격변론 등 창조과학자들과의 논쟁

 

본지는 밴쿠버에 위치한 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자 창조과학 운동의 중심에 있던 양승훈 교수가 2006년 부터 시작된 창조론 논쟁 이후 창조과학을 떠나게 된 배경과 학술적 논지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저는 2006년 7월, <창조와 격변>(예영)이라는 책을 출판한 이후 창조론 논쟁 속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자들과의 논쟁보다도 다른 창조론자들과의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헤프닝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한국인 창조과학자는 제가 제시한 다중격변론을 다른 이단적 주장들과 함께 부수는 만화를 그려 발표하기도 하고, 서울 인근에 있는 어느 교회는 제가 창조과학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집회 강사로 초청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1981년에 시작된 한국에서의 창조과학 운동은 일정 부분 한국교회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지적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한국 교회에서 성경의 과학적 변증을 주도한 창조과학 운동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교단과 관계없이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분위기는 창조과학의 전성기를 여는 기초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 시대의 새로운 제사장으로 부상한 과학자들이 무너지고 있는 성직자들의 통합적 권위를 재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홍수설과 젊은 지구론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단 한 차례의 홍수로 인해 지구상의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으며, 또한 대부분의 지표면의 모습이 결정되었다는 주장은 과학적 증거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습니다. 지구와 우주가 6천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주장 역시 틀렸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6천년/대홍수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틀린 이론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볼 필요 없이 저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1980년, ‘80 세계복음화 대성회’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던 창조과학 세미나에서 미국 창조과학자들로부터 처음 단일격변설을 소개 받은 이후, 제가 이 이론이 완전히 틀렸음을 확신할 때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으니까요. 어떻게 과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기초과학인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틀린 이론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믿고 있었을까요? 명백한 오류지만 모른 척하고 지내는 것이 틀렸음을 계속 주장함으로서 교회 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보다 나아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전문성 부족

 

첫째 이유는 창조과학을 전업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창조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지만 창조과학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연구를 하는 분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더라도 학자적인 치밀함을 가지고 연구하거나 평가하지 못합니다. 기원 논쟁의 대부분의 이슈들이 기초과학 분야에 속한 것들이며,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제대로 연구를 하기 위해 오랜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꼭 학교에서 해당 분야의 석, 박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혼자서라도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근래 북미주에 있는 두어 분이 인터넷을 통해 저의 글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창조과학 분야에도 전문가들이 많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전문가라는 분들의 글을 퍼서 올려놨습니다. 하지만 반론을 올렸던 한 분은 경영학을 전공한 분이며, 다른 한 분은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퍼온 글의 저자들도 역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창조과학에 참여하는 분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창조과학과 관련된 전문성이 아닙니다. 그러면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전문성이 부족하면 자신이 전문적인 연구를 하지 않음은 물론 학문적이지 않은 문헌을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8월, 저의 제명 문제를 논의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 이사회가 열렸는데 그 때 회의록과 더불어 우주와 지구가 젊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헌들을 20여개 첨부하여 임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우연히 저도 그 문건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문헌들 중에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글을 쓴 분들 중에 지구나 우주 연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었으며, 그 글들을 모은 분도 서울 인근 어느 대학 웹디자인학과 교수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주나 지구 연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과학자들은 대폭발이론을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지만 대폭발이론, 흔히 표준모델(Standard Model)로 알려져 있는 이 이론을 전공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 우주론을 전공하는 분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해당 과학 분야에서 전문성이 없는 분들이 또 다른 비전문가들이 쓴 대중서적들을 근거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논쟁에 참여하니 온갖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2006년 <창조와 격변>에서 제시했던 다중격변론에 대해서도 몇몇 창조과학자들이 비판했지만 아쉽게도 정작 이 이론을 제대로 공부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중격변모델을 비판하면서 대규모 운석이 떨어지면서 남긴 증거들이 화산폭발 때 만들어지는 증거들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며 운석 충돌 자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모리스(Henry M. Morris)는 달 표면의 수많은 운석 충돌 자국들을 사탄과의 영적 전쟁의 흔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에 있는 K-T 경계면 멸종도 부정합니다. K-T 경계면이 운석 충돌에 의한 것인지, 화산폭발에 의한 것인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K-T 경계면 멸종이나 수많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 흔적은 해석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입니다.

 

비록 제가 제시한 이론이기는 하지만 저 역시 다중격변설이 100%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이론은 적어도 지금까지 동일과정설이나 단일격변설(대홍수설)에 비해서는 맞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증주의자들의 표현을 빈다면 다중격변설은 더 나은 이론이 나와서 오류가 입증될 때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잠정적인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1997년, 한국 대학을 사임하고 밴쿠버로 올 때까지만 해도 창조과학 연구에 저의 남은 생애를 걸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창조과학의 2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지구/우주와 대홍수 개념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기보다는 그것들이 맞음을 좀 더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 다른 문헌들을 조사하면서 동시에 야외 탐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업으로 창조과학을 연구하면서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창조과학 모델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증거가 너무 많고 분명했습니다.

 

창조과학에서 특히 많은 오해가 난무하는 분야는 창조과학자들 중에서 전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천문학과 우주론 분야입니다. 창조과학에서는 현대 우주론의 표준모델이라고 하는 대폭발이론이나 별이나 은하의 나이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이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대폭발이론 등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 초기 우주론 연구는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려니와 상당한 이론물리학적 배경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현재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저는 대폭발이론을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학자적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폭발이론의 연구는 고사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아마추어들이 학문적이지 않은 문헌들을 근거로 대폭발이론을 마치 사탄의 이론인 듯이 매도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한 예로 대폭발이론을 비판하면서 이는 제재소가 폭발해서 저택이 만들어질 가능성, 수 백 만 개의 비행기 부품 더미가 폭발해서 747 점보기가 조립될 가능성 등을 운운하는 사람은 이 이론의 기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초기 우주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대폭발이론은 너무 많은 증거들이 축적되어서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폭발이론의 세부적인 분야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폭발이론보다 천문학 분야의 이론적 증거나 관측상의 증거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음은 분명합니다.

 

2. 편향된 인용

 

둘째 이유는 편향된 문헌 인용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나 말을 문맥에 맞지 않게 인용하거나 필요한 문헌만 선별적으로 인용하는 “생략에 의한 속임”(deception by ommission)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들만 선별적으로 인용하고 싶은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론자들도 그런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타깝게도 창조과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구나 우주 연대 문제를 다룬 창조과학자들의 문헌에는 의도적으로 데이터를 왜곡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창조과학 운동의 선구자인 모리스(Henry M. Morris)가 윗콤(John C. Whitcomb, Jr.)과 공저한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는 “수 백만 년 전에 사라진 바다”(the sea which vanished so many million years ago)라는 구절을 “여러 해 전에 사라진 바다”(the sea which vanished so many years ago)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방사능 연대측정법은 어떻습니까? 방사능 연대측정은 드물게 틀린 결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98% 이상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창조과학 대중강사 중의 한 사람이자 전직 과학교사였던 호빈드(Kent Hovind)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이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호빈드 자신은 한 번도 방사능 연대를 연구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 불신을 막론하고 자신이 한 번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은 분야에서 전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모두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기 이전에 피조세계의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아마추어로서 미국 창조과학자들의 문헌만을 접할 때는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은 마귀가 만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위스콘신 대학(University of Wisconsisn-Madison) 과학사학과에서 방사성 연대측정법의 하나인 탄소연대측정의 역사를 석사 논문 주제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탄소연대측정이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작성하면서 방사성 연대측정 분야의 문헌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그 분야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질학 분야에 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 차례의 노아의 대홍수만으로 지구의 모든 지층과 화석, 그리고 각종 지형들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단순하고 성경적인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단일격변설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랜 연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최소한의 지질학 상식을 가지고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인근에 나가서 하루만 돌아다니면 충분합니다. 어떤 반대되는 증거가 있더라도 나는 단일격변설만을 믿겠노라고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지구 역사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뚜렷합니다. 노아의 홍수는 분명하게 일어났지만 창조과학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는 아니라는 것이 증거에 충실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속도가 변한다는 주장도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에서는 백억 광년 이상 떨어진 별빛을 지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젊은 우주의 틀에서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는 광속이 무지하게 빨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먼 거리에 있는 퀘이사(quasar) 스펙트럼의 다중선 분석에 기초한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빛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음이 증명되었을까요?

 

실제로 창조과학에서 인용하고 있는 해당 논문의 저자들은 과거에 빛의 속도가 더 빨랐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주에서 빛의 속도가 변했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 속도의 백만분의 일 정도의 무시할 정도이며, 이 또한 관측오차 이내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결과는 오히려 젊은 우주론에 심각하게 반대되는 증거인데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데이터를 잘못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편향된 신학

 

셋째 이유는 편향된 신학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창조과학이 근본주의 운동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근본주의 신학의 특징은 반지성주의적이며 전투적이라는 점입니다. 창조과학이 그렇게 많은 과학적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성경을 과학적으로 변증하는데 반지성적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떤 창조과학자와 창조연대와 관련하여 장시간 전화로 논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의 연구만으로 충분하고 우리는 그 주장을 어떻게 전하는가의 문제만 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분은 더 이상의 연구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제게 더 이상 많은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근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반성의 부재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돌진합니다. 창조론 논의에 있어서 현재의 혼란은 자신의 주장이 신학적으로 어떤 함의가 있는지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채 신학적 기초가 없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너무 멀리 갔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의 단순함이 문제를 키웠다고나 할까요? 아직까지 그런 정관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기 한국창조과학회 정관에는 정회원이 되려면 이공계 분야에서 적어도 석사학위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창세기를 전공하는 구약학자들은 정회원이 될 수 없었고, 창조과학에 대한 신학적 반성은 애초부터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미국 창조과학회도 비슷합니다.

 

근본주의 신학이 단순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손에서 더욱 더 전투적이고 선명성 있게 다듬어진 것이 현재의 창조과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신학적 반성을 필요로 하는 문제를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이 다룸으로 인해 좌충우돌하는 현재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 창조과학의 문제는 신학이나 과학사, 과학철학자 등 인문학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지 않고 과학자와 공학자들 중심의 운동이어서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성의 여지가 없는 자연을 대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신학자들처럼 생각이 그렇게 깊지 못합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에서 그런 단순 사고가 유익할 때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단순 사고를 가진 분들이 창조/진화와 같이 신앙적, 이념적 함의가 강하게 내재된 분야의 지도자로 참여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신학적 반성 능력, 다시 말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분들이 강한 신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는 논쟁에 뛰어들게 되면 옹기전에 황소가 뛰어든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신학적 훈련을 받지 못한 분들은 자신의 과학적 주장이 어떤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한 예로 창조과학자들은 성경 문자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신들은 성경 문자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사용하면서도 자신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념적 자기 정체성(self-identification)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를 때는 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신을 근본주의자라고 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주장과 태도가 근본주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과학자들은 아무리 자신을 근본주의자, 혹은 성경 문자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신학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근본주의, 혹은 성경 문자주의로 부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스스로의 신학적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전문 신학자나 과학철학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도 훌륭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는 분들이 창조론 분야에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큰 고통입니다. 어폐가 많지만 갈릴레오의 심경을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디에 그런 성경 구절이 있느냐고 갈릴레오를 비판, 정죄했던 당시 로마 대학 교수들과 교황청 이단심문소(The Holy Office) 도미니칸 배심원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당시 천동설주의자들은 성경을 내세워 갈릴레오를 정죄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근거해서 갈릴레오를 정죄하고 비판했습니다. 오늘날도 창조과학이 천동설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하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나 잘못된 신학에 근거한 것은 아닌지...

 

흥미로운 것은 지금도 일부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도 있고, 천동설을 주장하는 책도 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글을 보면 하나 같이 성경 구절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사실입니다. 천동설을 주장하는 어떤 근본주의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준다는 성경 구절이 67개나 제시되어 있습니다!!

 

4. 소통의 문제

 

넷째 이유는 소통의 문제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저와 다를 수 있고 또한 저의 제가 제시한 모델이나 이론의 오류를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서 겸손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누구라도 완전히 주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편견과 아집, 독선과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하나님 말씀과 그 분이 만드신 피조세계의 증거들을 함께 연구한다면 진리의 성령께서 바르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기쁘게 대화할 수 있으며, 서로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론 오픈 포럼”은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입니다. 오픈 포럼이기 때문에 당연히 창조과학자들에게도 오픈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초기 단계라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복음주의적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초청합니다. 그래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서로의 의견을 겸손하게 개진하고, 논의함으로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선한 청지기로 구비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양승훈 원장 /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양승훈  edit@n314.ndsoftnews.com


[펌]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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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