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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 - 이관직 박사
이 글은 이관직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것으로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에 대한 이해를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정리한 글이다. 이에 요약 소개한다.
I. 창조질서 속에서 본 여성안수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여성안수를 이해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성을 다루고 있는 창조기사에 나타난 창조의 원리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성안수를 긍정적으로 보거나 찬성하는 이들은 창 1:27-28을 중심으로 창조시에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하게 지음받았으며 남자와 여자 모두 다스리는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권위의 차등은 타락후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창 2:19-20에서 여자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에서 창조사역에서의 아담의 리더십을 엿보게 하며 여자와의 역할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 23절에서 아담은 여자에게 이름을 칭함으로 그의 머리됨의 권위를 행사했다. 또 여자는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창 2:18, 20). 헬퍼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도우실 때 하나님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 단어이며 그 단어 자체가 열등한 것이라는 의미는 포함하지 않는다.
창조기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이 각각 동등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특성과 역할을 감당하도록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동등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현대의 페미니즘의 영향도 있다고 보여진다.
II. 신약에 나타난 여성안수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은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성취된 것으로 행 2:17-18에 인용되어 있는 것처럼 신약시대의 여성사역의 근거를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두 학자 존 파이퍼와 웨인 그루뎀은 초대교회에서 여성의 예언사역에 대해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예언 사역은 오늘날 설교나 특별계시 수준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을 비평한다.
신약에서 여성안수와 관련되어 자주 언급되는 성경구절들로는 고전 11:2-6, 14:34-36, 딤전 2:11-15, 엡 5:21-33, 갈 3:28을 들 수 있다. 고전 11:3에서는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밝힌다. 여기서 머리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머리를 권위와 연결짓고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 머리를 근원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레이몬드 오르트런드는 첫째 해석을 지지하여 남성의 머리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두 사람의 영적으로 동등한 인간의 동반자 관계에서 남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향으로 그 동반자관계를 이끌어가는 우선적인 책임성을 지는 것이다.” 그는 남성의 헤드십의 의미가 남성의 지배성의 개념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 밝히고 남성의 지배성이라 여성의 영적인 동등성과 권리, 가치를 무시하고 여성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의 의지를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김의환 교수는 고전 11:5절을 근거로 교회 안에서 여자가 예언하였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여자 안수를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 고전 11:2-6의 문맥을 볼 때 여자의 예언을 강조하기보다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됨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 비평하였다.
고전 14:34-35의 주석에서 박윤선 박사는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는 것을 남자를 지배하는 공적인 교훈을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이 말은 무슨 말이든지 금지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딤전 2:11-14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박윤선은 “종용히”라는 부사가 침묵만 의미하지는 않으며 부녀가 일반적으로 주장할 자가 아니라 순종할 자이며 소동할 자가 아니라 안정할 자며 남자들을 가르칠 자가 아니라 배울 자라고 말함으로 여성안수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여성의 필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권성수 교수는 딤전 2:12에 대해 바울이 이 본문에서 여자가 가르치는 것 일체를 금지한 것으 아니며 여자가 공예배에서 남자(성인)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였다고 주석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더글라스 무의 해석에서 본문의 가르침은 성경이나 교리의 전승과 관계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무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그 가르침은 생활교육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이 본문을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남성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 문맥상 그같은 해석은 적합하지 않다고 비평하면서 주관한다는 동사는 여성의 남성 지배적인 주관을 포함하여 일체의 남성 주관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하였다.
권성수 교수는 고전 11:5에서 여자가 공예배에서 예언하는 것에 언급하면서 바울은 남성 헤드십에 순복하는 자세를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여자의 공예배시 예언을 인정했다고 하면서 바울에게 상호모순성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는 여성안수는 남성 헤드십을 무시한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사역의 제한은 남성 헤드십의 원리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 3:28의 말씀 또한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남자와 여자가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맡게 되는 사역의 구분이 없다는 의미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에는 제한이 없이 모든 인간들에게 문이 열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본문으로 보아야 한다고 존 파이퍼와 웨인 그루뎀은 주장한다. 아무튼 이 말씀은 노예들과 여자들에게 갖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시각에는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루이스 존슨은 갈 3:28에 관하여 역사적 인물들, 예를 들어 안디옥의 감독인 익나티우스, 져스틴 마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힙폴리투스, 닛사의 그레고리, 존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칼빈의 주석들에서 살펴본 후에 결론 짓기를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갈 3:28이 결혼관계에서와 교회생활에서 남자, 여자의 역할의 구별을 폐지하고 있다고 본 사람은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권성수 교수도 그의 논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는 갈 3:28의 말씀을 가지고 딤전 2:11-15의 본문에 나타나는 남녀의 역할 차이와 남성 헤드십의 원리를 부정하고 여성 사역의 완전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남녀의 역할 차이와 남성 헤드십의 원리는 타락 이전 창조의 원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권리면에서 차별이 없이 동일하나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구별이 있는 것이라고 밝힌다.
박형룡 박사는 그의 교의신학전집 중 「교회론」에서 여성안수에 대한 견해를 언급한다. 그는 여성의 여러 가지 사역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전체교회에 대해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은 남자에게 속한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박형룡 박사는 안수를 받는 직책 외에 있어서 여성의 다양한 사역과 교훈하는 사역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시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총시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쳐 온 박아론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하는 입장이 정통개혁신학의 입장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바울이 비록 여성이 교회에서 다스리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을 금하였지만 여성들의 다양한 사역의 가능성에 대해 높게 평가함을 그의 사신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여성들의 이름들을 지적하며 문안하였고 그리고 겐그리아 교회의 사역자로서 뵈뵈를 추천한 후에 브리스길라에게 그의 남편에 앞서 이름을 들고 있다. 또 그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유오디오와 순두게를 권면하는 부분을 통해 보면 이들이 교회에서 차지한 사역의 영역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로마에 있는 교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가르치는 사역은 아니었다고 해도 이미 활발하게 있었고 바울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많은 여성들이 초대교회에서 여러 가지 면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안수받은 자들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사역은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전한 자들도 여자들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 따라간 자들도 여인들이었고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들 가운데는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보아 예수님의 사역에도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여성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여성들이 교회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안수를 받고 활동했다는 증거는 성경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III. 맺음말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신구약 66권의 말씀은 정확무오한 말씀이나 죄로 오염되어 있는 한계성을 가진 우리 인간들의 성경해석은 때로는 100% 완벽하게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이 여성안수 문제에 대해서도 여성안수를 찬성하는 이들의 견해를 비판하는 동시에 열려 있는 귀와 눈을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해석하며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소중한 존재로서 동등하지만 역할 면에 있어 차이가 있고 남성의 머리됨의 전제하에서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과 사역을 지지하고 있다.
끝으로 필자는 여성이 전체 교회에서 다스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안수를 찬성하지 않지만 여성안수를 반대하는 것이 역으로 여성이 보다 다양한 사역의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제한하는 구실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현재의 한국교회와 미래의 한국교회에서 크리스챤 여성들의 사역의 장이 구체적으로 보다 넓혀지도록 교회와 교단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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