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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교회 내 여성 사역의 제한성과 중요성 - 김의환 박사
이 글은 故 김의환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글로 교회 내 여성 사역의 제한성과 중요성을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에 요약 소개하여 본다.
I. 서론
교회 내에서 여성 사역의 성격과 범위의 문제가 20세기 교회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 2000년간의 교회적 전통을 깨고 여성의 목사, 장로 안수 문제가 적극적으로 토론되고 있으며 이미 가톨릭교회와 일부 보수적인 교회를 제외한 많은 교회들이 여성 안수를 단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전에 감리교회와 기독교 장로교회들이 여성 안수를 시행하여 왔으나 통합측 장로교회만은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장기간 의견 대립현상을 유지하다 드디어 수년전에 여성 안수를 가결하여 시행 중에 있다.
20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며 일어난 여권운동이 기독교 내에도 혁명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복음적 교회들도 이러한 세속적 여권운동의 압력에 굴복하여 여성의 목사 장로 안수를 개방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랫동안 미국 내에서 개혁주의 정통파 교회로 알려진 크리스챤 개혁파 교회도 20년간의 총회적 논란 끝에 개방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제는 여성의 성직 개방이 하나의 도도한 흐름처럼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제 여성 안수에 반대하는 신학자나 교회는 시대 착오적이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지목되어 가고 있다.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는 성경에 대한 새 해석을 시도하며 정당화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하게 지음받은 남녀가 왜 성직에 있어서만은 구별되어야 하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구별없이 동등한 취급을 받는다는 영적 특권이 사역에 있어서도 동등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발전할 때 여성 안수 문제로 연결된다.
과연 오늘의 교회는 지난 2000년간의 관행이나 침묵을 깨고 여성에게 성직 부여를 위해 안수를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여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여성의 교회 내의 사역을 확대시키기 위해 여성안수를 허락하는가 아니하는가의 문제에 있지 않고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로 집약된다. 여성 안수 자체는 하나의 의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성의 성직 개방은 성경의 가르침과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가르침이 잘못된 것을 시인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성경에 비추어 교회가 2000년간 잘못 가르쳐 왔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나 정말 여성안수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인가? 아니면 시대적 압력에 굴복하고 마는 것인가의 문제로서 오늘의 교회가 당면한 최대의 이슈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여성 안수 문제를 다루려 할 때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은 오늘의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II. 구약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를 함께 지으신 사실(창 1:27)은 남자와 여자가 인격적으로 동등하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 차원에서 동등할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함께 다스리는 문화적 사명도 함께 받았다(창 1:26, 28).
이 문화적 사명을 이행함에 있어 창세기 2장은 보다 자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실 때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돕는 배필인가?
그것은 땅을 정복하기 위함이요 문화적 사명의 보다 완벽한 수행을 위함이었다. 창1:28절에서 “땅을 정복하라”고 명하실 때 그 방편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야 함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성은 남성의 갈빗대로 지음받은 이차적 피조물이므로 창조 순서 자체에서부터 남자의 종속성을 면치 못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사실은 여자가 남자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23)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곧 연합하여 둘이 한 몸(창 2:24)을 이룬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아담과 하와는 인격적으로 동등하며 한 몸이며 한 사명을 받은 동역자이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은 남편에게 땀 흘려 일하게 하였고 아내에게 아이를 낳는 수고를 하게 하시므로 사역 분담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사역 분담에 있어 여자에게는 돕는 자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의 돕는 자의 위치가 오늘날 교회에서 여성들의 적극적 사역을 금하는 성경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미 여성들의 사역을 활용하셨다. 여성들이 사사로, 선지자로 쓰임 받기도 하였다.
요엘 선지자는 장차 여자들도 예언할 것을 일찍이 예언하였다(욜 2:28). 미리암은 모세와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출애굽 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민 12:4). 그의 여선지자로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모세의 사역의 보조적 역할임을 망각한 미리암이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였느냐(민 12:2)”고 비방하며 모세의 리더십에 도전하는 실수를 범하였고 여호와의 징벌이 따랐다(민 12:9-10).
드보라는 사사시대에 여선지자로 활약했다(삿 4:4-6). 드보라는 선지자로만 아니라 사사의 사역도 감당했다(삿 4:5). 이스라엘은 드보라의 리더십 아래 40년 동안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삿 5:31). 훌다도 여선지자로 활약했다. 에스더 역시 이방 포로 가운데서 극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출하였다. 이렇듯 구약의 여자들도 선지자로, 사사로 구속역사의 과정 속에 중요한 한 몫을 감당했다.
III. 신약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
신약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은 마태복음 첫 장에서부터 나타난다. 예수의 족보에서도 돋보이고 예수의 탄생 기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수의 생애와 십자가 수난 그리고 부활사건 주변에 여자들의 활동상은 눈부실 정도이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십자가 현장에서 도망칠 때 예수의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여인들이 끝까지 지켜 보았다. 죽음을 예비하여 나드 가름을 예수의 몸에 바른 자도 마리아였다. 주님의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마리아의 도움을 함께 전하여 그의 기념비적 신앙을 본받으라고 극찬하셨다(마 26:13). 무덤에 맨 먼저 찾아간 사람들도 갈릴리에서 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었다.
누가는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헌신적 봉사를 언급하며 유명한 아볼로를 전도하여 개종시킨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16장에서 그들을 소개할 때 그의 목숨을 대신해 목숨을 바치기를 각오한 특별한 동역자로 부르고 있다. 주목할 일은 유대적 관례를 깨고 바울은 브리스길라를 아굴라보다 먼저 기명한 사실이다. 여성의 위치가 남성의 위치보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확인되는 경우이기도 하다.
로마서 16장에 나타난 바울의 많은 여자 동역자들의 이름은 주목할만 하다. 특히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의 어머니라고까지 언급하였다(롬 16:13).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여성의 사역이 그의 선교운동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는가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
빌립보교회에 있어 두 여성 지도자들인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중요한 위치에서 사역한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마음을 품고(빌 4:2) 사역을 할 것을 권면하였다. 이처럼 바울의 선교 사역에 있어 여성의 파트너로서의 비중을 기대했으며 그가 세운 교회들이 여성 지도자들의 적극적 참여와 봉사에 의존한 바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주의 일을 함께 있어서 남녀가 상호의존 관계에 있음을 바울은 이렇게 지적한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 11:11-12)
신약이 가르치는 교회 안에서의 여성 위치는 구약시대에 레위인 중심의 성전 사역에 비하면 훨씬 개방적이고 진취적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여자들의 공중기도 하는 것이나 예언하는 것을 인정하였다(고전 11:5). 빌립의 네 딸도 예언하는 자로 활동하였다(행 21:9).
IV. 여성 사역의 제한에 관한 고찰
여성 사역은 신구약에 공히 인정한 바이나 그것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인정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교회에서 참여는 하였으나 그것은 남성들의 사역에 대한 보조적인 참여임을 가르친다. 성경은 교회 내의 여성 사역의 중요성과 함께 제한성을 강조하고 있다.
1. 딤전 2:12-14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여기에 여자의 가르침에 대한 금지의 범위가 문제시 된다. 여자는 일체 교회에서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남자를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인가? 후자의 뜻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남자를 주관할 수 없다는 다음 명령에서 주관의 대상이 남자인 것처럼 가르침의 대상도 남자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도서 2:3-4에서 여자가 다른 여자를 가르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바울이 금하는 것은 여자가 교회에서 남자를 가르치는 일이다.
다음으로 주관할 수 없다는 뜻은 남자 위에 권위로 다스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제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딤전 5:17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이 교회 내 여성사역을 제한하는 것은 다스리는 장로직과 가르치는 목사직임이 분명하다. 바울은 이어서 여성 사역의 제한에 관한 이유를 2:13-14에서 밝힌다.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바울은 여자의 가르침을 금한 이유를 단순히 그 당시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 사회였기 때문이 아니라 창조에 있어 우선순위가 남자가 먼저이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바울이 여성의 가르치는 사역에 대한 금기 이유를 창조에 있어 남녀간의 역할의 차이에 두었기 때문에 금기의 성격은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임을 알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창조 후 타락의 원인 제공자가 아담이 아니라 여자였다는 사실을 밝힘으로 바울은 창조 질서면에서만 아니라 타락과 구속역사 차원에서 여자와 남자의 역할 차이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어서 15절에 여성의 역할이 독특한 영역 해산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 여성의 가정 사역에 있어 주역성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2. 고전 11:2-10
고전 11:5에 바울이 교회 안에서 여자가 예언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는 사실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의 가르치는 것을 허락한 것으로 해석하여 여자 목사를 세워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본문 전체 문맥을 살피면 여자의 예언에 강조가 있지 않고 여자의 예언은 은사활용까지도 남자와 여자의 머리됨에 강조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전 11:3).
여자가 머리에 반드시 모자를 써야 할 이유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11:3)일 뿐만 아니라 여자는 남자의 영광(11:7)이 되기 때문이다. 여자가 머리에 모자를 씀으로 남자의 머리됨을 예언하는 중에도 나타내야 한다는 논리이다. 여자도 예언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의 머리됨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예언의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들 구약의 여선지자 드보라의 사역을 들어 여성 목사 안수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사기 4:2-16까지 전말을 자세히 살피면 드보라의 선지활동도 고전 11:3-7까지의 교훈에서 보는 남자의 머리됨을 전제하고 있다. 드보라는 다만 예언의 은사를 받아 그것을 공적으로 활용하기보다 종려나무 아래 거하여 조용히 사역하였고 그에게 찾아오는 자를 상대하였다(삿 4:4-5).
이 점에서 구약시대의 다른 남자 선지자와 차이가 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여호와의 계시를 알릴 때에도 개인적으로 상대했다. 그리고 사사로서의 드보라는 전쟁 수행에 있어 남자 사사들처럼 전쟁의 지휘관으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락을 따라 갔을 뿐이고 전쟁의 공은 바락이 세웠다(삿 4:15-16). 드보라는 다볼산 전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개인적으로 바락에게 전하는 일만 했다(4:6-7).
예언은 이처럼 하나님께 받은 바를 그대로 전하는 일만 하는데 그친다. 그러나 가르치는 일은 받은 계시를 설명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은사는 서로 상이하다. 오늘날 여선지자요 사사였던 드보라의 경우를 들어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직을 여성에게도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 오히려 드보라의 선지 활동 자세는 신약의 남자의 머리됨의 가르침을 잘 설명하여 주는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VI. 여성 사역의 중요성
성경은 교회 내에서의 여성 사역의 제한을 분명히 밝힘과 동시에 여성 사역의 중요성도 동시에 강조한다. 비록 여성 사역의 제한이 있기는 하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요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장차 유업을 함께 이어 받는데는 동일함에 틀림없다(갈 3:28-29).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다 함께 구원받을 후속자로 천국운동의 경쟁자가 아닌 동역자로 세우셨다. 선교와 교육, 봉사면에서 여성에게 남성을 돕는 동역자로서 무한한 활동의 은사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중요한 여성 사역의 영역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도와 선교운동
아볼로를 전도한 브리스길라와 같이 전도에 앞장 서서 개교회 부흥에 기여할 수 있다. 남성이 파고들이 어려운 아파트 전도는 여성의 전도가 효과적이라 하겠다. 전도주일에 1등인 대상이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 되어 있는 사례들은 여성들에게 전도의 활로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준다. 교회 여전도회에 가입하여 전도와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직접 공헌하게 된다.
2. 기도 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전 1903년 원산에서 여자 선교사들의 기도회 모임에서 일어난 기도의 열기가 평양으로 점화된 사실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오늘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산기도회의 모임에서 절대적 다수를 이루는 여자 성도들의 기도의 힘을 한국교회 부흥의 밑거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찍이 화란 자유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가 복음적인 목회자요 신학자로 변하게 되는데는 처음 담임하였던 교회 여성도들의 끈질긴 기도의 힘이 작용한 사실은 교훈하는 바가 크다. 어거스틴을 개종시킨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초대교회 역사를 움직인 동인이 되었다.
3. 성경공부 운동 및 주일학교 운동
딛 2:3-5가 가르치는대로 성숙한 여인은 어리고 성숙하지 못한 여인들을 가르칠 책임과 사명이 있다. 한국교회 안에 여성도가 많은 사실은 성숙한 여성도들의 교육적 사명을 더욱 일깨워준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낮에는 집안에 여성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여자들 중심의 성경공부와 구역 예배에서 여성 리더의 필요성과 책임은 지대하다 할 것이다.
오늘 크게 부흥한 교회일수록 여전도사, 여성구역장, 여성권찰들이 활발한 봉사를 안하는 교회가 없다. 또 각종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봉사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여전도사에게는 전교회 성도들을 위한 심방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 여전도회 주관으로 여자 강사를 초청하여 교회적 부흥회를 개최하여 함께 은혜의 잔치에 동참할 수도 있다. 일찍이 명향식 전도사는 안수를 받지 않았어도 여자 부흥사로 크게 활동한 사실이 있다. 그 때에 많은 남편들도 참석하여 함께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선교지에 가서 선교하는 여자 선교사는 많은 남녀를 개종시킨 전례들을 남겼다. 순교한 남편 선교사의 뒤를 따라 남미 에콰도르의 아우카 토인들에게 가서 선교한 엘리사벳 엘리옷이라는 여선교사는 전체부족을 전도하여 개종시킨 후 교육한 교육사적인 사표를 남기기도 했다.
4. 문서 선교운동
성경 번역, 기독교 철학이 담긴 문학작품 창작, 경건과 전도를 위한 저술, 테이프 제작, 복음서점 사업 등을 통해 효과있는 문서 선교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여성이 교회 안에서의 창의적 사역의 길은 널리 열려 있다. 다만 목회자를 돕는 동역자의 자세에서 교회 봉사를 위해 헌신할 때 루디아, 뵈뵈 그리고 브리스길라가 걸어갔던 같은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VII. 결론
오늘 여성 안수 문제는 교회가 당면한 중대한 이슈이다. 그러나 안수문제는 단순한 교회의 한 이슈문제에 그치지 않고 성경 권위 문제와 직결된다. 과거 한국교회가 여성 안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부정적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그만큼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 성경대로 믿는 정통신학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자유주의 신학의 득세로 인해 새로운 성경해석이라는 미명 아래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성경 해석을 시도하여 여성 안수를 점차 허용하여 가고 있다. 성경이 분명히 명시하는 금기도 시대에 비추어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분명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성경의 가르침보다 현실 상황을 더 중시하는 경향 때문이다. 여성 안수가 새 해석으로 허용되면 그 다음은 동성연애에 대한 새 해석이 뒤따른다. 이어서 하나님의 호칭을 바꾸어 남성, 여성이 공히 만족할 수 있는 중성 명사 채용을 주장하는 운동이 뒤따른다. 이 추세는 미국교회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실정이다. 어디서나 이 연결고리는 뗄 수 없는 새 해석의 공식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보루에서 안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남성의 머리됨의 일관된 대 주제와 범위 안에서 여성 사역의 교회 내에서의 성경적 제한을 인정하면서 여성 사역의 극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과거에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유교문화에 영향을 입은 한국교회가 여성 사역의 활성화를 충분히 추진하지 못한 점을 개선하여 여성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반적인 여성사역의 적극적 추진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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